Living aboard/Italia

이탈리아 생활기 91일차 : 기분이 울적한 하루

라도유비타 2020. 3. 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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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생활기 91일차 : 기분이 울적한 하루


오늘은 본의 아니게 기분이 울적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근데 학원에 갔는데 새로운 학생들이 왔고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 쪽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페인어와 이태리어가 비슷해서 금방 금방 배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나만 아시아인이었고 그들이 막 빨리 말할 때면 알아들을 수가 없어 매우 답답했다.
그리고 어쩌다 오늘 수업시간에 자기 나라에서 어떤 집 형태(아파트, 단독주택 등)에서 사는지 선생님이 물어봤는데
내가 한국 집 형태로 그대로 이야기해버렸다 '빌라'로..
근데 이탈리아어로 빌라는 멘션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맨션사냐고 재차 물으셨고, 아차 싶어 아니라고 아파트긴 한데 낮은 아파트라며
한국에선 그걸 빌라라고 한다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빌라는 맨션이고 어쩌고저쩌고 막 설명하며 왜 내가 빌라로 이야기하게 됐는지 얘기할 틈을 안 주었다.

가끔 정말 이런 대화 방식이 나를 지치게 한다.
'아니 왜 이렇게 말을 가로채는 거야, 좀 들어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월요일의 공식 질문인 주말에 머 했냐의 답변에
토요일에는 영어와 이탈리아 등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영어는 했겠지~근데 이탈리아어는 모르겠다고 답하셨다.
물론 장난이 섞인 거란건 알지만.... 상대적으로 스페인어 쓰는 사람들에 비해 급 못하는 느낌이 들어
가뜩이나 기분이 별로였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찜찜해졌다.

우리나라보다 수업이 체계적이지 않아서 따라가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다.
커리큘럼이 없으니까...내가 오늘 뭘 배울건지 다음에 뭘 배울건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문법이나 표현에 대해 익숙해질 1~3일 정도의 시간도 없이 그냥 바로바로 넘어간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온전히 흡수하고 받아들이고 배우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한 데,
어쩔 때는 잘한다고 칭찬해주시지만 어쩔 때는 오늘과 같은 '너 좀 공부해야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꽤나 별로다. 차라리 중국어와 일본어를 더 파고들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ㅋㅋㅋ

울적+슬픔+스트레스가 몰려오길래 집에 와서 한숨 자고 남자친구와 통화 하며 기분이 풀어져서
저녁 밥 먹고 정리하고 있었는 데
주방에서 집주인 아줌마와 마주쳤고,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나에게 "쟈듀?"라고 하시길래
"잉? 쟈듀? 그게 머에요?"라고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음.....너 이름이 머라고 했지?"라고 하는 게 아닌가.

'헐.. 산지 한 달 됐고 내가 전에 메모 남기면서 내 이름까지 적고, 왓츠앱 메신저로 몇 번 메시지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 이름을 모르고 있다니.."

암튼 그래서 이름을 이야기해드렸더니 "아 미안, 내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라고 말씀하시면서

급 머라 머라 이탈리아어로 이야기를 하셨다.

근데 나도 컨디션 안 좋았던지라  '창문'어쩌고 저쩌고 하시는 데 
이탈리아어가 귓등으로 다  통통 튕겨나갔고
간단한 이탈리아어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직감으로나마 뭔가 할 말이 있는 데, 그걸 돌려 말하는 거 같길래..
뭐지? 혹시 또 전에 같이 살던 가족이 돌아와서 이사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건가? 싶었는데,

"학원은 어땠냐, 학원은 언제까지 다니냐, 학원 방학은 언제냐"물으셔서
내가 답하자 우물쭈물하시다가 갑자기 "너 온 지 한 달 됐네!!시간 참 빠르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집 주인아줌마의 본 뜻을 알게 됐다.
'아 월세 달라는 거구나.'

근데 월세 주는 날이 헷갈려서 "제가 5월 13일 날 들어왔으니 이번 달 13일에 드리면 되냐"구 물었더니
한 달(30일)이 아니라, 일요일부터 일요일을 1주로 해서  4주(28일)에 한 번이라고 하셨다.

학원 통해 구한 집이라 나도 4주에 한 번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여기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도 한 달을 보통 4주로 보고 들어온 날에 주고 
에콰도르 친구도 들어온 날에 주고 있다고 왜 미리 주냐고 했었기에..

아무튼 월세는 당연 줘야 하니까, 죄송하다 하고 내일 드리겠다고 했더니
급 조금 민망해하시면서 "괜찮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다고"하며 하는데 기분이 또 먼가 씁쓸했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진 대로 살겠고, 나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기보다는 
한 곳에서 좀 정착해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지금 이 집이 그러길 바라고 있지만..
돈만 여유가 되면 집 구해서 혼자 살거나 아님 마음 맞는 친구 있음 집같이 알아봐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또 샘솟았다.

학원 같은 반 수업 듣는 사람 중에 혼자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여기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거나 아님 이미 나이가 있어서 어느정도 모아둔 돈으로 집을 구한거라..

물론 지금 집주인 분은 그  전 집주인 아줌마에 비해 굉장히 유하신 편이지만,
같이 살면서 아예 스트레스가 안 생길 순 없는 거니까..

어제는 전 집주인 아줌마 집에 같이 살았던 일본인 친구와 만났는데
그 친구도 이번 주에 이사를 한다고 했다, 6층이지만 시내와 가까이 있고 4명이서 같이 쓰는 건데
집 주인도 괜찮았고 일단 방 월세가 지금 월세보다 저렴하다고 한다.
친구도 초대해도 된다고 해서 자기 이사하면 놀러 오라고 해서 놀러 가기로 했는데
그때 가보고 괜찮음 혹시 같이 사는 사람 중에 나가면 알려달라 할까 싶기도 하다.

일단, 나도 월세를 낼 때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이런 게 타지 생활이고 세입자의 입장인가 보다.
오늘은 내 방 문을 열면 한국의 내 방이길 바랄만큼 한국이 그리웠다.
그냥 이런 언어 고민, 월세 고민에서 잠시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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